interview
열매 맺는 소리
jan. 2026
[1부 피아니스트: 기도로부터 시작된 꿈]
수수예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송이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에 거주한 지 약 20년 정도 되었고,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을 와서 피아니스트로 솔리스트 최고 연주자 과정까지 마쳤어요. 현재는 독일 남부에 있는 바덴바덴에 살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 정도 내려오면 있는 도시이고요, 교회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만하임에서 한인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수수예
처음 음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송이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는데 아버지께서 굉장히 신실하신 분이셨고, 성가대 지휘도 하시고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시던 분이었어요. 저희 집에 딸이 넷인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저희와 함께 예배를 드리시면서 딸들 모두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녀가 되기를” 늘 기도하셨어요. 그 기도 덕분인지 저도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라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수수예
그렇다면 이후 독일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송이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바흐 음악을 정말 좋아했어요. 독일은 바흐나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의 본고장이기도 하고, 국립음대가 많아서 학비 부담이 적다는 현실적인 장점도 있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독일을 선택하게 됐고, 만하임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는데, 첫째 언니가 몇 년 동안 동생들을 도와줘서 그 덕분에 유학을 올 수 있었어요.
[2부 생계로서의 음악: 다양한 음악의 길]
수수예
어떻게 독일 만하임에서 지내게 되셨나요?
송이
유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이 제 미래를 정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기도를 많이 했어요. 지금 다니는 만하임 교회의 예배를 드리고 나서 ‘이 교회를 섬기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일종의 서원기도였던 것 같아요. 근데 예상치도 못하게 더 큰 도시의 유명한 학교들에 합격하는 거에요. 하지만 그런 학교들을 내려놓고 만하임을 선택하게 됐어요. 무엇보다도 ‘내가 이곳에서 다닐 교회를 정말 사랑하며 신앙을 지키고 싶다’라는 마음이 더 컸거든요. 최고 연주자 과정에 지원할 때도 다른 학교는 보지 않고 만하임만 지원했어요. ‘여기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이었죠.
수수예
약력을 보면 음악교육 학사과정도 밟으셨는데, 연주자뿐 아니라 교육으로의 길을 가시게 된 배경도 궁금해요.
송이
연주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 교육도 병행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연주자와 교육자, 두 가지 길을 함께 걸어오고 있어요. 한국에서 배운 방식 그대로 독일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교육자로서의 교육을 따로 다시 받게 됐습니다. 최고 연주자 과정은 말 그대로 솔리스트를 위한 과정이었고, 교육에 대한 공부는 그 이후에 이어지게 된 거죠.
수수예
졸업 후 계속 독일에 남고자 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독일이 주는 감각 중 어떤 것이 남고자 하는 마음을 준 것 같으신가요?
송이
보통 음악가들은 콩쿠르를 통해 커리어를 쌓아가지만, 저는 생계를 먼저 책임져야 해서 콩쿠르보다는 가르치는 일에 집중했어요.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일에서의 삶에 자리 잡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음악 교육을 하는 직장을 갖게 된 이유도 컸지만, 각 사람이 갖고 있는 연주의 개성을 살려주는 독일의 스타일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마스터 2년 그리고 최고 연주자 과정을 4년 했는데, 그 시간들이 조금 저는 짧게 느껴졌었어요. 그러니까 음악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더 배우고 싶다라는 그런 마음이 매우 컸습니다.
[3부 피아노 연주: 연주자로서의 마음가짐]
수수예
오케스트라 및 실내악 연주 이력도 많으신데, 어떤 방식이 더 잘 맞으시나요? 혼자 무대에 설 때와,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할 때의 차이도 궁금해요.
송이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 크게 바뀐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혼자 무대에 서서 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게 저한테 가장 잘 맞는 방식이라고 느껴왔고요. 그래서 솔로로 연주할 때는 오롯이 음악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제가 느끼는 감정과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나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할 때는 또 다른 배움이 있어요. 혼자 하는 연주가 제 이야기를 깊이 파고드는 작업이라면, 함께 연주할 때는 서로의 호흡을 듣고 맞추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거든요. 그 안에서 기다리는 법, 조율하는 법, 그리고 내 소리만이 아니라 전체의 흐름을 보는 법을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수수예
무대에 설 때의 긴장감이나 마음가짐은 예전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연주를 해오시면서 무대를 대하는 태도나 연습 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송이
요즘은 사실 무대에 설 때 예전처럼 많이 떨리지는 않아요. 연습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바이올린 하시는 분들 보면 턱 밑에 굳은살 생기잖아요. 피아니스트들은 엉덩이 밑에 그렇게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연습을 해요. 그만큼 준비를 다 했다고 느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자’라는 마음이 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학부 때는 손이 떨리고 다리도 떨릴 만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냥 준비한 대로 잘 하고 오자, 연습한 그대로 보여주고 오자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갑니다.
연습할 때도 ‘완벽하게 쳐야지’라는 데만 집중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제가 이 곡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제 진심을 어떻게 스토리텔링하듯이 풀어낼지에 더 집중해요. 제가 먼저 음악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듣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몰입하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연습 초반과 중반에는 테크닉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 중반 이후부터 공연 전까지는 마치 연기하듯이 곡 안의 감정,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들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지를 많이 연습해요. 녹음도 자주 해서 들어보면서, 미스터치나 기술적인 부분은 기본으로 점검하고, 그 위에 제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하나씩 덧입히는 식으로 준비합니다.
[4부 꿈을 넘어서, 소망]
수수예
매년 리사이틀을 개최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송이
저는 음악인으로 살고 있지만, 제 삶의 우선순위는 늘 신앙이 먼저예요. 그건 아버지의 가르침이기도 했고, 신앙생활 자체가 제 삶에서는 굉장히 살아 있고 재미있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라고 늘 생각해요.
제가 만하임에 남아 있었던 것도 사실 좋은 학교 때문이라기보다는,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이 컸어요. 한인교회가 재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 일도 많이 돕게 됐고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가진 음악으로 교회를 어떻게 세우고, 또 이웃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독일에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독일 사람들 중에는 클래식이 일상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음악으로 위로도 전하고, 교회 사역에도 실제적인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자선 음악회를 오래 도와왔어요. 연주도 하고, 인터미션 때 김밥을 팔기도 하고, 그렇게 10년 넘게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이제는 혼자 해도 되겠다’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누군가의 초청을 기다리는 연주가 아니라, 제가 직접 기획하고, 대관하고, 홍보하고, 준비해서 독주회를 열게 된 거죠.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독주회를 열면 수익금을 전부 헌금으로 드리고 있어요.
1년에 한 번 정도는, 제가 솔로 피아니스트로 설 수 있을 때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시간을 꼭 갖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솔직히 제 일이라고 생각하면 부담도 크고, 매번 제 모습을 무대에 드러내는 게 부끄럽기도 해요. 그런데 ‘이건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힘이 나고, 또 계속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그 마음으로 매년 리사이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수예
창작자로서 무언가를 계속 꺼내어 놓을 때 생기는 취약함이 있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 서시는 송이님은 더욱 그럴 것 같은데, 그런 흔들림을 어떻게 다루고 계신지 궁금해요.
송이
창작하는 입장에서 늘 느끼는 건데요, 사실 우리에게는 ‘비교의식’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님 안에서 주신 뜻을 붙들고 계속 전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각 사람에게 맞는 열매를 맺게 하시거든요.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시니까요.
물론 학생 때나 젊을 때는 늘 경쟁 속에 살죠. “쟤는 뭐 하지?”, “이번엔 또 누가 뭘 했대” 이런 분위기 속에서 10년, 20년을 보내기도 하잖아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 사람만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꼭 끄집어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거죠. “나는 저 사람보다 못해”,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은 사실 우리를 흔드는 마음인 것 같아요.
물론 우리가 부족한 존재인 건 맞지만, 빛이시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다 보면, 남에게는 없는 귀한 것들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세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도 존중하게 되고, ‘아, 저 사람에게도 저 사람만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하고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수수예
마지막으로 창작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에게 나눠줄 이야기가 있을까요?
송이
살다 보면 20대 때 특히 그렇지만, 교수님이나 선생님, 또 소위 말하는 대가 같은 분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기도 하고, 존경하게도 되고요. 전도서(3:11)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결국 완전히 만족할 수 없는 존재로, 더 큰 의미와 진리를 향해 무언가를 바라보고 갈망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선망하고, 닮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성공 여부를 떠나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가까이서 보면 다 연약함이 있고 각자의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요즘은 제가 어렸을 때로 돌아간다면, 사람을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 사람도 힘든 게 있겠지’ 하고 한 번 더 이해해 주는 마음이었으면 좋았겠다 싶거든요.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힘들 때도 참 많잖아요. 그래도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넓은 그릇의 마음을 갖도록 우리를 빚어 가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국 그런 인성과 태도를 갖게 된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믿음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삶을 통해 누군가가 위로를 받을 수도 있잖아요. 꼭 어떤 결과를 내야 한다는 데 너무 집중하기보다는, 하나님과 잘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수예로부터]
[수수예로부터]는 인터뷰 이후 수수예가 인터뷰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새벽에 집안에 울려 퍼진 기도. 피아노 연주로 닿는 기도의 열매가 맺히는 소리.
송이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무언가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믿는 건 머리와 가슴만이 아니라, 온몸을 그 일에 던지는 일이라는 것.
배움과 동시에 스스로의 생계를 보살피고, 10시간을 연습하고, 엉덩이에 검은 굳은살이 생기고.
그 모든 일들은 믿음의 증거이고 또 열매라는 것.
안부를 묻겠다는 말에, 지금까지도-지금도-앞으로도 똑같은 것이라고 답하셨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는 끝없이 온전히 믿을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아버지의 기도에서 시작된, 자매들의 돌봄으로 행해온 믿음이, 지금처럼 그렇게 피아노 소리로 독일에서 울려 퍼졌으면 좋겠습니다.